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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늘 결핍감으로 힘겨웠던 나는 마흔을 전후해 개인상담을 받았다. 2년 가까이 상담을 받는 동안 남편, 아이들, 회사동료들과의 불화를 매주 상담가에게 일러바쳤다. 아이가 엄마에게 일러바치듯이... 그럼에도 상담가는 온전히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슬픔, 힘듦, 억울함을 위로하고 공감해주었다. 상담가와 만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 같은 보살핌과 사랑으로 내 텅 빈 가슴을 채워나갔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내가 돈을 주고 상담가라는 내 편(?)을 산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 누군가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절대 거절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청마루 활동을 신청하고 기다리면서 설레고 기대에 부풀었다. 새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 내가 아주 작지만 힘을 보태고 함께하게 된다니 가슴이 벅찼다. 초기 경청마루에 오신 분들을 두어 차례 만나면서 나는 많이 당황했다. 일반 시민들이 억울하고 힘겨운 일을 하소연하러 오리라는 내 예상과 달리  ‘망상’ 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각한 분들이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70~80%가 그랬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그분들을 감당하기도 벅찰 뿐더러 나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여기처럼 내 말 잘 들어주는 데가 없다.”는 말씀들을 들으며 용기를 냈다. 

 

활동 초기에는 오시는 분들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마음의 준비도 부족해 그분들에게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 부분 그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게는 망상이라 여겨지는 점들이 그분들에게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힘겨움과 고통이 조금이나마 마음으로 느껴졌다.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수십 년을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고, 휴대폰을 도청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려고 집에 화학약품을 뿌린다고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말 그대로 지옥일 것 같았다. 그런 상황임에도 그분들은 도움을 청할 누군가도 없이 대부분 혼자서 고통과 불면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분들 가운데 70대 한 어르신이 기억에 남는다. 젊었을 때부터 건물 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는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자신이 청소하는 화장실을 더럽게 만든다며 그 장면들을 찍은 사진과 송사에 휘말려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을 주장하는 글이 적힌 낡은 종이를 여러 장 가지고 오셨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이 할머니를 신고해 경찰서에 갔는데 글을 몰라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했다며 그 후, 한글을 배워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글로 썼다며 보여주셨다. 그 연세에 글을 배우고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려 하시는 할머니께 “정말 장하고 대단하시다.”고 칭찬해드렸다. 순간 할머니 얼굴이 밝아지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에 “어머니 웃으시니 정말 이쁘네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칭찬받으니 기분 좋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힘겨운 삶을 이야기하실 때는 손을 맞잡고 같이 울었다. 이처럼 기구한 인생이 또 있을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가난 탓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부모의 살가운 보살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할머니가 온갖 험한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음에도 지금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 몸으로 홀로 자식 키우며 살아온 하루하루가 힘겨움의 연속이었을 텐데 스스로를 ‘망상’이라는 고통의 늪에  빠트린 할머니를 보며 오죽 힘이 들었으면 저렇게 되셨을까 싶으니 가슴이 저렸다. 그 순간 내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비록 그분들의 고통을 덜어줄 그 무엇도 해드릴 수 없었지만 그분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그분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고 함께했던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처음에는 내가 그분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그분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걸 다시금 되새긴다. 나와의 짧은 만남이 그분들에게 발 뻗고 누울 아랫목을 데우는 훈훈한 군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치유활동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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