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수위원회 경청마루 한 달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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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듯, 누구에게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작은 하소연에서부터 십 수 연간을 싸워온 가슴속 응어리들까지,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며 공감해주는 자리 말입니다. 공감인은 경청마루를 통해 그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보았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보고자 합니다.

 

“내가 원래 꽃엄마였어”

 

한 할머니는, 이 사회에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열망이 크신 분이셨습니다. 어른으로서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세월호 사건만 생각하면 울분이 터지고, 기가 막혀서 안산에까지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새로운 이대 총장이 나와서 다행이라며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셨습니다. 

 

“할머니는 이대 총장보다 더 위대하세요.” 활동가 선생님이 건넨 말에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얘기 많이 하셨으니까, 다음에 우리 만나면 다른 얘기해요. 나라 걱정은 좀 내려놓으시고, 할머니 생각도 하시면서 사세요. 할머니가 진짜진짜 소중해요.” 연거푸 이어진 따뜻한 말들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조금 웃으셨습니다. 처음엔 물도 안 드시고, 과자도 필요 없다고 하신 할머니는 그제야 과자 봉지를 뜯기 시작하셨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꽃들도 눈에 들어오시는 듯 했습니다. “내가 꽃을 너무 좋아해서 원래 별명이 꽃엄마야. 다들 그렇게 불렀어.” 두 번째 만남에, 그것도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할머니는 드디어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신 겁니다. 저는 그 얘기가 정말 반가웠습니다. 

 

한 할아버지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앉아마자 정치 얘기를 이리저리 풀어내셨습니다. 오랜 세월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할아버지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듯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활동가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르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 말 한마디에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셨습니다. 1시간 만에 처음으로요. 그 뒤로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헤퍼졌습니다. 기분이 풀린 할아버지가 계속 지난 세월을 풀어내는 동안, 선생님은 계속해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셨습니다. “정말 강하시네요”, “진짜 대단하세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인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그 누구에게라도 위로나 응원, 이해나 지지를 받는다면 그 삶에 미소하나 정도는 더 띠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곳을 평생 기억하면서 열심히 살아볼게요”

 

한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아주머니는 한국이 이런 나라일지는 몰랐다고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경청마루에 들어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으로 귀화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으로서 온갖 설움을 겪으면서도, 생활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든 최저임금을 받는 현실에 아주머니는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업무 중에 상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회사는 이를 외면했고 오히려 아주머니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몇 번이나 생을 저버릴까 생각도 하셨다는 아주머니는, 나갈 때 우리를 꼭 안아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을 평생 기억하고 잘 살아볼게요.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그 말이 얼마나 감동적이 던지요. 덕분에 이곳은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엔 웃으며 서로 ‘화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모두의 삶을 응원하면서요.

 

“내가 왔을 때 경찰을 안 부르는 곳은 여기뿐이거든”

 

거의 매일 방문하시는 한 아주머니가 있으십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문제라고 느끼시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찾는 기관들에서는 아주머니를 기억하고, 아주머니가 불만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경찰을 부르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경찰을 부르지도 않고, 오히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니 매일 오시는 것이죠.

 

어떤 날은 치유활동가 선생님께서 아주머니의 문제제기에 공감을 표하면서“선생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한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이야기에 매우 솔깃해하시며“정말요?”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셨지요. 칭찬에 익숙하시지 않아 곧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주머니에게 떠오른 표정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떠나실 때마다 호두를 두 알씩 주십니다. 덕분에 제 테이블엔 매일 호두가 새롭게 채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2일, 국민인수위원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간 경청마루에는 157번의 방문이 있었고, 우리는 89명의 서로 다른 분들을 만났습니다. 노동 현장의 아픔을 가지고 온 분들도, 숨기고만 싶은 가정의 문제를 들고 오신 분들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법정 소송의 답답함을 가지고 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한분한분의 삶에 개입해 모든 것을 해결해드릴 수는 없을지라도, 들어주는 것의 힘만은 확실히 목격했습니다.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들어올 때의 표정과 나갈 때의 표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간이 지나면서, 여러 번 재방문했던 분들의 변화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화만 내던 할머니는 이제 우리를 꼬옥 안아주시기 시작했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던 할아버지는 우리를 조금씩 믿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은 기적들은 여러 치유활동가 선생님들께서 함께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처음 시도되는 일인지라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저 듣고 공감해주는 일에 충실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짧은 만남이라도 생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들으면서도 치유가 이뤄진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의 나눔이 제겐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경청마루처럼 공감인이 가진 치유의 공기를 더 퍼지게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글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치유활동가 오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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